오로라 헌터 - 타임랩스 촬영 과정 (월간 비디오플러스 2013.9월호)

2013. 10. 19. 11:25별, 그리고 사진 - 국외/오로라 - Yellowknife, Canada

오로라 헌터 제작과정에 대해서 월간 <비디오플러스 2013.9월호>에 게재된 글의 원문입니다.


DSLR로 촬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보여준 

SBS 다큐멘터리 <오로라 헌터> 


제작 : 박종우 (인디비전)

타임랩스 촬영 : 권오철


이 프로그램을 제작한 박종우 PD는 사진기자 출신으로 다큐멘터리 사진가로 더 유명하다. 필자 역시 천체사진가로 타임랩스 촬영으로 인해 영상 쪽에 발을 담그게 되었다. 박종우 선생님은 평소 사진계의 대선배로 알고 지냈는데, 그 인연으로 다큐멘터리 촬영 때마다 타임랩스 촬영을 맡고 있다.






국내 최초로 시도된 오로라 다큐멘터리


오로라는 태양에서 방출된 입자들이 지구의 자기장에 이끌려 내려오다 대기와 반응하여 빛을 내는 현상이다. 밤하늘에서 가장 아름다운 현상이면서 개기일식보다도 강렬한 시각적 충격을 주는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단 한 가지 문제는 대한민국에서는 볼 수 없다는 것. 극지방까지 가야 볼 수 있다. 이 프로그램을 제작한 박종우 PD님도 전 세계 안 가본 곳이 없을 것 같았는데, 오로라를 아직 못 보셨다고 했다. 오로라를 보고 싶다! 이것이 오로라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게 된 가장 큰 이유다. 


전체 촬영을 해외 로케이션으로 진행해야 하는데, 그것도 가기 어렵고 물가도 비싼 극지방들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지원이 확정되고 나서야 우리는 꿈을 실행에 옮길 수 있게 되었다. 오로라는 태양활동의 11년 주기에 맞추어 2012년부터 극대기가 된다. 게다가 오로라를 다루는 다큐멘터리로는 국내에서 최초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원을 받을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원래 구성안은 젊은이들 몇 명이 꿈을 찾아 떠나는 과정이었다. 캐나다의 오지를 탐험하며 점점 더 북쪽으로 여행하고 여행의 마지막에 오로라를 보고 위안을 받는 이야기를 촬영할 예정이었다. <Man vs Wild>의 형식에 가까웠는데, 문제는 제작비. 촬영팀 뿐만 아니라 출연자들까지 캐다다 탐험에 나서려면 지원금 등 전체 제작비로 감당할 수 없었다. 아웃도어 업체 몇 군데서의 지원 여부마저 No로 결론이 나고 나서는 이야기를 바꿀 수밖에 없었다. 


결국 정해진 방향이 없이 캐나다의 가을 오로라를 담으러 떠났다. 박종우 PD님이 기자 출신이라 일반적인 다큐멘터리와 제작 방식이 좀 다르다. 대개는 사전 조사를 철저히 해서 구성안이 나오면 그에 따라 필요한 촬영을 하고 끝낸다. 그런데 안 본 것을 보고 싶다는 제작자의 호기심에서 출발한 다큐에서 사전 구성안은 별 의미가 없다. 현장에 가서 보기 전에 어떻게 제대로 알고 구성안을 완벽하게 쓸 수 있겠는가? 그래서 현지에 가서 좌충우돌 부딪치면서 취재를 하고 와서 이야기가 완성된다. 이 방식은 이야기가 재밌어진다는 장점이 있지만 이야기가 어디로 튈지 모르기 때문에 실제 필요한 것보다 훨씬 많이 촬영해야 한다는 단점이 있다. 잃어버린 필기구들이 어딘가 모여 살고 있다는 별이 있듯이, 촬영하고도 사용되지 않은 영상들이 모여 별을 하나 이루고 있을 것이다.


이런 식으로 촬영하니 기간도 오래 걸리고, 그에 따라 비용도 많이 들어간다. 게다가 캐나다 가을/겨울 2회, 아이슬란드, 노르웨이, 러시아의 시베리아 북쪽 끝 네네츠공화국까지의 해외 로케이션을 진행하다 보니 아무리 생각해봐도 제작비가 적자였다. 그래서 이렇게 찍으면 적자 아니냐고 박PD님께 여쭈어 봤더니, 대답이 걸작이다. 

“당연히 적자지”

“그런데 왜 찍어요?”

“안 가본데 가 보는 게 목적이야...”

돈이 목적이 아니라니 할 말이 없었다. 아무튼 그것은 제작자(정확히 말하면 사모님)이 감당해야 할 몫이니까.  


 아이슬란드에서 촬영한 오로라.


 아이슬란드, Vik 해변가.



 캐나다 옐로나이프. 오로라 빌리지. 핑크빛으로 빛나는 환상적인 오로라가 나타났다.



 캐나다 옐로나이프의 겨울철 오로라 풍경. 흰 눈이 달빛에 빛난다.



 캐나다 옐로나이프의 가을철 오로라 풍경. 반영이 아름답다.




다큐멘터리보다 더 다큐멘터리 같았던 해외 촬영


DSLR로 전 분량을 촬영했기 때문에 촬영 장비는 상대적으로 간소한 편이었다. 타임랩스 촬영을 위한 달리와 로테이터까지 들고 갔음에도 중량이 초과된 적이 없다. 하지만 복잡한 장비들이 많으니 검색에 시간이 많이 소요되었다. 인상이 좋은 편인 필자는 대개 아무 문제가 없었지만, 중국은 예외였다. 아이슬란드는 싼 항공권을 알아보다 보니 인천-북경-코펜하겐-베르겐-오슬로-레이캬비크라는 긴 여정을 거쳐서 들어갔는데, 중국을 거쳐 갈 때 문제가 생겼다. 디지털 장비에서는 배터리가 없으면 무용지물인데, 리튬이온 배터리 용량이 일정 이상이면 중국 공항에서는 압수한다. 전 세계 공항 중에 유일할 것이다. 배터리의 용량 얼마 이상이면 안 된다는 그들만의 규정이 있는데, 필자가 가지고간 배터리들은 양이 많아서 그렇지 하나의 용량은 규정치 내였는데도 불구하고 전량을 압류했다. 3시간을 싸워서 통과할 수 있었다. 귀국길에는 싸우기 귀찮아서 수화물에 넣고 부쳤더니 배터리 40만원 어치가 압류 당했다. 중국 거쳐서 촬영가실 분들은 참고하시길. ENG용 대용량 배터리도 압류될 수 있다고 한다. 압류되면 끝이다. 암시장에 내다 팔아서 그 놈들 생계 유지에 쓴다는 소문이다.


아이슬란드 촬영에서는 빙하가 쌓여 있는 바닷가에서 큰 파도 한 방에 촬영 장비들이 단체로 세상을 하직하는 사태도 있었다. 그것 때문에 올해 보릿고개 넘기가 아주 힘들었다. 시간이 빠듯하다 보니 비행기 타러 갈 때마다 난리를 쳤다. 아이슬란드 출국 시에는 공항 가는 길에 사고가 나서 타이어가 터졌다. 차에 가득 실린 짐을 내리고 예비 타이어를 꺼내서 갈아 끼웠는데, 아마 내 생애 최단 시간을 기록했을 것이다. 그 뒤에 당황해서 헤매다가 비행기 출발 30분 전에 도착했는데 비행기는 탈 수 있었다. 출국에서도 중국 가는 국제선이 김포 출발이라는 것을 모르고 인천 공항에 앉아 있다가 비행기 문 닫기 전에 간신히 탈 수 있었다. 



 파도가 장비를 덮치다


결국 러시아 촬영에서 사단이 났다. 무비자로 입국할 수 있다는 신문기사만 믿고 비행기를 탔는데, 오보였던 것이다. 출입국관리소에 며칠을 잡혀 있다 간신히 떠날 수 있었다. 필자는 그때는 동행하지 않고 박종우PD님과 조수만 갔었는데 그 상황에서도 페북에 여유만만하게 올라오는 현장 상황이 너무나 재미있었다. 오로라 촬영하러 다니는 과정이 더 재미있을 것 같다고 했는데, 결국 그리되고 말았다. 오로라 헌터, 즉 오로라를 보러 돌아다니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다큐가 만들어진 것이다. 필자의 경우 원래 오로라를 촬영하러 나섰는데, 하다보니 주인공으로 까지 등장하게 된다. 연기력(?)이 형편없어서 그랬는지 출연료는 따로 없었다. 하지만 여러 나라를 여행했고, 노르웨이에서의 열흘간의 크루즈 여행에서는 초호화 서비스를 받으며 오로라 책을 한 권 완성할 수 있었다. 



 노르웨이 해안선을 따라가는 크루즈


 크루즈 배 앞머리에서 촬영한 오로라



 크루즈 맨 위 갑판에서 오로라를 보는 사람들



 크루즈 선미에서 촬영한 오로라



니콘 D4 - 동영상으로 밤하늘의 오로라를 담다


이번 다큐멘터리 촬영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DSLR이 사용되었다. 다큐멘터리 제작을 위해 니콘에서 D4와 D600 및 렌즈들을 지원 받았다. 동영상 촬영은 니콘 D4의 몫이었는데, 원활한 촬영을 위해 바라본에서 나온 멀티파인더를 부착해서 사용했다.


오로라는 밤하늘에 나타나는 현상이므로 1/30초라는 동영상의 셔터속도 한계로는 담기가 쉽지 않다. 그렇지만 타임랩스 촬영에만 의존할 수 없었기에 저조도 촬영을 테스트해 보았다. 가장 중요한 것이 노이즈 성능인데, 동영상 노이즈의 경우 니콘 D4와 캐논 5D mark III를 비교해본 결과 니콘 D4가 화소 피치가 커서 그런지 월등히 나은 결과를 보였다. (니콘 D4와 캐논 1Dx를 같이 놓고 비교해 볼 수 있었다면 흥미진진했을 것 같다.) 화질을 우선시 해서 ISO는 6400으로, 조리개는 한 스톱 조여서 f/2로 촬영하기로 결정했다. 은하수를 촬영할 때 ISO 3200에 f/2.8에서 25초 정도의 노출이 필요하다. 그에 비해 7~8스톱이나 부족한 것이므로 오로라가 은하수보다 훨씬 밝기는 하지만 매우 밝은 것이 아니라면 제대로 담기 어렵다.  달빛이 좀 있을 때 오로라 서브스톰이 터져야만 간신히 쓸 수 있는 그림을 담을 수 있었다.


동영상으로 오로라를 담을 때 또한 애를 먹은 것은, 동영상용 헤드가 대부분 수직방향 하늘까지 카메라 방향을 올리도록 되어 있지 않은 것이었다. 삼각대를 기울여서 설치하거나 급할 때에는 누워서 카메라를 배 위에 올려놓고 숨을 참아 가며 찍어야 했다.



 니콘 D4에 바라본 멀티파인더를 부착



 D4 리얼타임 동영상으로 촬영한 오로라




타임랩스로 고화질 오로라 촬영


대부분의 오로라는 타임랩스 촬영으로 담았다. 타임랩스 촬영은 니콘 D4, D600과 필자의 캐논 5D mark II/III가 사용되었다. 그냥 고정으로 촬영하면 밋밋하기 때문에 달리와 로테이터를 최대한 활용해서 촬영했다. 필자가 사용한 장비는 Skypix의 Astro Dolly인데, 해외 촬영에 편하도록 3등분으로 레일을 잘라서 운반할 수 있었다. 


오로라 이외에도 일출이나 일몰, 월출과 월몰, 옐로나이프 시내의 그림자 등 굉장히 많은 부분에서 타임랩스가 활용되었다. 아마도 국내에서 제작한 다큐멘터리에서 타임랩스 촬영분이 가장 많이 사용된 것이리라. 


시작 부분에 등장하는 국제우주정거장에서 바라본 지구 영상은 NASA의 우주비행사가 촬영한 원본 사진(대부분 니콘 D3로 촬영)을 받아서 후반작업을 거쳐 제작했다. 방송 며칠 전에 작업 요청을 해오는 바람에 아이슬란드 출장 가는 비행기 타기 직전까지 밤을 새며 작업해야 했다. 


이렇게 저렇게 제작하여 박종우 PD님께 전달한 타임랩스 영상을 세어보니 3백 개가 넘었다. 그 중 아주 일부만 방송으로 나갔다. 나머지는 시간 될 때마다 편집해서 인터넷으로 올릴 예정이다.



우주왕복선에서 촬영한 오로라




촬영에 사용된 Skypix의 Astro Dolly 셋트



 일출 타임랩스



 월몰 타임랩스



 달 그림자 타임랩스



 도시 그림자 타임랩스



영하 40도 극한의 온도에서 촬영


극지방에서 촬영하다 보니 저온에서의 촬영이 매우 힘들었다. 영하 40도까지 떨어지는 밤에 밖에서 촬영을 진행해야 하니 촬영자가 옷을 잘 입는 것이 중요하다. 눈만 나오게 입어도 마스크는 숨 쉬는 습기가 얼어붙어서 딱딱해지고, 눈에 눈물이 얼어서 눈썹에 하얗게 작은 고드름이 달린다.


영하 30도 정도까지는 배터리 사용시간이 조금 짧아지고 액정이 느려지거나 잘 보이지 않긴 하지만 크게 촬영이 어렵지 않다. 니콘 카메라의 경우 이전까지 나온 카메라들은 저온에서 작동이 안 되는 경우가 많아 걱정이 많았는데, D4와 D600부터는 영하 30도까지는 촬영에 큰 어려움이 없었다. 하지만 영하 40도까지 떨어지니 캐논/니콘의 모든 카메라들의 완충한 배터리로도 한 시간을 버티지 못했다. 하지만 배터리만 갈아 끼우면 얼마간 촬영은 가능했다.


정작 문제는 추운 곳에 있다가 따뜻한 곳으로 갈 때 생긴다. 갑자기 따뜻한 곳으로 이동하면 안경에 김이 서리듯이, 따뜻한 곳의 습기가 차가운 물체에 붙어서 물방울이 생기는 것이다. 카메라 외부뿐만 아니라 내부에도 습기가 맺히게 되는데, 완전히 마르기 전에 다시 추운 곳으로 가게 되면 그대로 얼어붙어서 카메라를 사용할 수 없게 되며, 무리하게 작동시키다가는 카메라에 치명적인 고장이 발생하기도 한다. 따라서 그 날의 촬영이 마무리 될 때까지 카메라를 실내로 가지고 들어오지 말고 밖에 두는 것이 좋고, 촬영을 마무리하고 들어갈 때에는 밖에서 장비를 정리해서 카메라 가방에 넣은 후에 실내로 옮겨서 온도 변화에 서서히 적응되도록 하는 것이 좋다. 카메라가 건조되는 데는 상황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대개 4시간 이상이 걸리는데, 다시 촬영을 나가기 전에는 카메라가 완전히 건조 되었는지 확인해야 한다.

 

저온에서 장시간 촬영을 위해서 만든 것이 보온도시락을 이용한 외장 배터리팩이다. 18650 리튬이온 배터리들을 보온 도시락통 안에 수납하고 전선만 밖으로 빼서 카메라에 연결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24시간 연속으로 촬영할 수 있었다. 영하 40도 가까이 떨어지면 전선이 구부러지지 않고 부러지기 쉽기 때문에 전선에 힘이 가해지지 않도록 조심조심 다루어야 한다. 


영하 40도까지 떨어지던 날 달리의 전선, 배터리의 전선, 그리고 릴리즈의 전선들이 부러져 나갔는데, 불행 중 다행으로 촬영의 마지막 날이었기에 촬영 자체에 지장은 없었다. 



 

눈밭에 카메라를 오래 세워두면 이렇게 눈 알갱이가 날아와 붙어서 눈꽃이 핀다. 렌즈에도 붙으면 촬영을 망쳤다고 보면 된다.



밤새 오로라를 촬영한 새벽, 비장의 무기(!)인 보온 도시락 배터리를 들고 비장한 표정으로 2010년 연평도에서 어느 높으신 분이 했던 보온병 코스프레를 재현했다. 










(잡지 나간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