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드킬의 추억 – 황당했던 로드킬

2014. 1. 23. 12:01별, 그리고 사진 - 국외/뉴질랜드

제목은 영화 ‘살인의 추억’에서 따왔다. 밤에 촬영하러 다니다 보면 원치 않게 로드킬을 하게 되는 경우가 생긴다. 첫 번째 로드킬은 1997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거제도에 살고 있을 때였는데, 밤 12시쯤 홍포 쪽으로 촬영하러 넘어가는 고갯길에서 심하게 굽어진 곡선 구간을 돌자마자 고양이 두 마리가 시야에 들어왔다. 한 마리는 검은색 한 마리는 얼룩무늬. 이미 피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차 아래에 뭔가 퉁하고 부딪치는 소리는 너무나 기분 더러웠다. 상황 자체가 애드거 앨런 포의 소설이 생각나는 분위기였다.


호주에 가면 밤에 캥거루가 많이 돌아다니는데, 속도를 높이면 사고가 나기 쉽다. 실제로 거의 몇 킬로미터마다 캥거루의 사체가 길 옆에 널브러져 있다. 캥거루는 덩치가 있어서 부딪치면 차도 찌그러진다. 이건 우리나라에서 노루나 고라니도 마찬가지.


가장 조심해야 할 로드킬 대상은 낙타라고 한다. 이것들은 몸무게가 500kg이 넘는데, 다리는 상대적으로 가늘고 키는 크다. 차로 받으면 낙타가 그 반동으로 차 위로 넘어지는데, 운전자가 깔려서 즉사하게 된다고 한다.


뉴질랜드에서는 토끼가 유독 많았다. 원래 살던 놈들이 아니라 사람이 옮겨다 놓으면서 천적이 없다보니 무한번식해서 그렇다고 한다. 밤에 운전하면 길에 거의 백 미터마다 튀어나오는 토끼를 피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어린이들처럼 운동신경이 발달하지 않아서 피한다고 피하는 게 꼭 바로 앞에서 차로 뛰어든다. 나름 잘 피하고 다녔는데, 어느 날 앞 차가 30분 동안 7마리를 치었다. 나도 그거 보다가 2마리를 치었다. 나는 이게 열흘 동안 친 것 전부다. 


새벽이 되면 길에 토끼 사체가 거의 백 미터마다 하나씩 널브러져 있다. 그런데 점심 전에 거의 없어진다. 맹금류들과 갈매기나 기타 다른 동물들의 먹이가 되는 것이다. 그렇게 자연은 순환된다. 이 동네 사람들은 토끼 죽는 거 별로 불쌍해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들에게는 외래종인 토끼가 우리네의 괴물쥐 ‘뉴트리아’와 비슷한 존재인 것이다.  


제목에는 ‘황당’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사실 당하는 입장에서 쓸 단어는 아니지만 아슬아슬하게 피했기 때문에 다행히도 죽이지는 않은 경우다.


호주 서북부 촬영에서, 차로 강을 건널 일이 많았다. 한번은 물을 건너다 보니 물속에 뭔가 있는 느낌이어서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차 바로 앞 물속을 유유히 가로질러가는 그것은 내 키를 넘는 크기의 악어였다. 


이번 뉴질랜드 촬영에서, 새벽에 촬영지로 이동하는데 앞에 뭐가 튀어나왔는데, 그것은 펭귄이었다. 길 앞에서 얼쩡거리더니 이내 풀숲으로 어정어정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