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리만자로, 꿈을 넘어
2010. 11. 25. 21:46ㆍ별, 그리고 사진 - 국외/킬리만자로에서 별을 보다
한겨레신문 2008.1.3. 죽기 전에 꿈을 현실로, 2008년 새해를 맞는 50인의 50가지 선택
올해 드디어 킬리만자로에 다녀올 수 있었지만, 사실 그 곳에 갈 생각을 해온지는 십년도 더 되었다.
왜 하필 킬리만자로였을까. 적도 근방에서 가장 고도가 높은 곳이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조용필의 ‘킬리만자로의 표범’이나 헤밍웨이의 ‘킬리만자로의 눈’에서 연유한 막연한 동경이었을까. 사실 찍고 싶었던 사진은 딱 한 장이었다. 적도의 화산 킬리만자로에서 수직으로 분출되는 듯한 별들의 일주사진.
그 사진을 찍기 위해서는 20kg이 넘는 촬영장비와 높은 산에서 얼어 죽지 않기 위한 등산 장비 등을 꾸려서 비행기를 타고 태국과 케냐를 경유하여 탄자니아까지 가서, 며칠씩 산을 올라가야 한다. 돈도 많이 들고, 체력도 많이 소모되며, 높은 고도의 희박한 산소에 적응하지 못하면 고산병에 걸려 심한 경우 사망할 수도 있다.
필요한 것이 많았기에 장기간에 걸쳐 조금씩 준비를 해왔다. 궤적이 분출되는 느낌으로 나올 정도의 광각 파노라마 카메라는 몇 년에 걸친 테스트 끝에 김카메라에 의뢰하여 제작했다. 등산 장비들은 국내 산행에서도 쓰이기 때문에 종종 사야하는데 그 기준은 ‘킬리만자로에서도 쓸 수 있는가?’였다. 물질적인 것은 이렇게 구색을 맞추게 되었으나 정작 가장 구하기 힘들었던 것은 바로 시간이었다. 대한민국의 야만적인 노동 환경에서 내가 원하는 기간에 열흘이나 휴가를 낸다는 것이 가능한 일인지. 결국 대기업에서의 안정된(?) 고소득을 포기하고 나서야 시간을 얻을 수 있었다.
이렇게 십년이 흐르는 동안 강산도 변한다고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 특히 인터넷, GPS기반의 내비게이션, 그리고 디지털 카메라는 준비 상황에서부터 목표하는 최종 사진 결과물에까지 큰 변화를 주었다.
인터넷은 사진 뿐만 아니라 인류 생활 자체에 엄청난 영향을 주었다. 이제 킬리만자로를 가기 위한 최신 정보와 지도, 경로, 숙소 예약부터 가이드 물색뿐만 아니라 다녀온 사람들의 경험담까지 인터넷에서 찾아볼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아직도 책에서 얻는 것만큼 체계적이고 심도 있는 정보를 찾으려면 피상적이고 중복되고 심지어는 오류가 포함된 수많은 정보들 사이를 헤매고 다니면서 나름대로 체계화 하는 요령이 필요하다.
수년간 모아온 킬리만자로 관련 자료 - 대부분은 해외에 직접 주문해서 구입한 것이다
GPS기반의 내비게이션으로 다른 사람들이 갔다 온 루트를 구글맵과 위성사진으로 확인할 수 있고, GPS기기만 들고 간다면 현장에서도 내 위치를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예전에 촬영 다닐 때에는 항상 조수석에 지도를 펴놓고 확인하면서 다녀야 했는데 요즘은 출발 전에 검색창에 입력만 하면 되는 세상이다.
십년 전의 계획은 중형 필름 카메라 2대를 들고 가는 것이었는데 무게도 무게이거니와 필름을 안전하게 운반하는 방법을 고민하다보니 귀국 전에 나이로비의 코닥 Q-Lab에 들러 현상해서 오는 것까지도 검토했었다. 디지털에서는 백업 장비만 잘 갖추면 된다. 또한 디지털은 기존 필름에서는 불가능했던 여러 표현 방식이 가능해졌기 때문에 촬영할 것도 기존의 필름 작업부터 디지털 사진과 영상으로 다양해졌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변한 것이 있다면 바로 나 자신인데, 그동안 회사 다니면서 류머티즘 증상이 점점 심해지고 오십견까지 왔는데도 병원에 제대로 가지 못하고 증상을 키워온 덕분에 - 대한민국 노동자가 어쩔 수 없잖나 - 여러 날의 산행에 고생이 많았다. 원래 고산의 극한 환경에서는 자기 몸의 가장 약한 부분부터 이상이 온다고 한다. 저녁이 되면 서 있을 수도 없을 정도인데도 다음 날이 되면 다시 20km 씩을 걸어가는 것을 보면 사람이라는 게 참 놀랍다. 이때 등산 스틱의 도움이 컸다.
아무튼 결국 다녀오고야 말았는데, 2% 부족한 느낌이라 아무래도 다시 갈듯 하다. 꿈을 그저 간직하고만 있다면 언제까지나 꿈일 뿐이다. 그러나 한번 해보고 나면, 꿈이 현실이 되는 순간, 그 너머가 보이게 된다.
위 사진을 찍던 밤이 지나고 일출을 맞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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