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이야기 셋

2009. 5. 5. 22:32살다보면

- 2008.04.16

1. 바람잡이

급한 것이 아니면 꾹 참고 있다가 P&I, 코엑스에서 열리는 사진영상기자재전에서 직접 살펴보고 특판가에 구하곤 하는데,

특히나 오래된 재고품 떨이는 상당히 끌리는 물건들이 가끔 나온다.
지금 쓰는 삼각대중 하나도 그런 인연으로 들어온 것이고.

올해 보니 지쪼(Gitzo)삼각대 중에 이제는 거의 단종되다시피한 엄청 무거운 알미늄 삼각대가 화끈한 가격에 재고처리(?)로 나와주었다.

예전에 스튜디오 등에서는 가끔 쓰이던 모델인데, 너무 무겁고 단수가 적어 인기가 없는 모델이다.

그러나 그만큼 안정적이므로 장노출을 이용하는 천체사진 쪽에서는 유리한데, 단 차에서 내려서 걸어가는 거리가 부담스럽지 않은 곳에서만 가능할 것이다.

어쨌거나 요새 포토페어에 걸 작품 만드느라 돈이 마르다 보니 이틀째 전시부스 앞에서 만지작 거리며 고민만 하고 있었는데...

판매원의 어떤 권유에도 흔들림이 보이지 않던 굳은 마음도
다른 사람이 나타나서 살 것처럼 만지작 거리기 시작하자마자
바로 무너져 내린 것이다.

단호한 나의 한마디...
"저거 계산해주세요."


이래서 바람잡이라는 단어가 국어사전에 생겼나보다.

 


2. 지난 선거 이야기.

우리 집에는 X나라당 지지자와 진보X당 지지자가 같이 살고 있다.
아침에 나눈 선거 관련 대화.

X나라당 지지자 : 찍을 넘이 없어.

진보X당 지지자 : 왜?

X나라당 지지자 : 참여정부 일하던 넘이 말 갈아타고 나왔지 뭐유. 남자가 지조가 있어야지. (이후 궁시렁 궁시렁...)

진보X당 지지자의 한마디 말로 대화는 종결되었다.
"처자식이 있나보지."

ps)
우디 앨런 감독의 영화중에 이런 내용이 있다.
젊은 20대가 보수당원이었는데, 어느날 교통사고를 당해서 병원에 갔는데 우연히 뇌에 이상이 있는 것이 발견된 것이다.
뇌수술을 받고나서는 열열한 노동당원이 된다는...

그런데 이 이야기를 같이사는 X나라당 지지자에게 하면 화낸다.

 


3. 그녀의 이니셜은 C

충무로에 사진찾으러 가는데, 작품 사이즈가 커서 차를 가지고 가야했다.
차는 너무나 막히고... 심심해서 자동차 서랍을 뒤적거리다보니 왠 음악테이프가 하나 나왔다.

애절한 사랑노래들, 그것도 명곡들만 엄선해서 녹음한 것이고,
곡명을 적은 필체는 대단히 여성스러운...
분명히 언젠가 누구에게선가 받은 것인데 도저히 기억이 안나는 것이다.

필체를 보면 마누라도 아니고, K도 아니고
어디선가 본 이 필적의 주인공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떠오르지 않는 것이었다.

A~Z까지 이니셜을 떠올려 보고 싶었으나...
화려한 20대를 보낸 것도 아니고,
(22살부터 거제도의 공장가서 일했으니 화려할래야 화려할 수가 없고...)
아직도 마음은 청춘인것 같은데,
벌써 애딸린 30대 중반이 되어버렸으니 서럽기 서울역에 그지없었던 것이다.


어쨌든 누구에게 받았는지 모르는 관계로 알수없는 설레임이 있었던 것이다.

혼자만의 설레임으로 간직하고 있기에는 너무나 아까와서
같이 사는 사람의 울컥증으로 발전시켜 보기로 결심한 것이다.


마누라에게 테입을 쑥 내밀며 물어본다.
"이거 누가 준건지 알겠어? 분명히 여자글씨인데 누구에게 받은 건지 모르겠단 말이야... 상당히 정성들여서 노래도 고르고 직접 녹음해서 준건데..."

그리고 마누라의 눈치를 살펴본다.
나의 불순한 의도가 과연 성공하는지...


그런데 기대와 달리 마누라의 대답.
"아... 이거 C가 나한테 준건데, 당신 차에 놔둔거 아니유."

그냥 물어보지나 말았으면
테잎을 들을때마다 설레임이나 남았을 것을.
두마리 토끼를 다 놓치고 말았다.